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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의 역사 : 삼국시대 ~ 송나라
      글쓴이 : 김태용     날짜 : 11-04-12 13:56     조회 : 10071    
      태그 : 태그 없음
    ####

    최근에 사용하게 된 기어렉스 GR-7400B 키보드로 타이핑 연습

    일자형 엔터키와 긴 백스페이스가 장착되어있지만 키압이 높아서 타이핑시에

    손목이 아프다. 조금만 더 키압이 낮으면 사용하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사용불가.

    ####

    하룻밤에 읽는 세계사 중에서
    미야자키 마사카츠 지음, 이영주 옮김

    중국의 역사 : 삼국시대 ~ 송나라

    ==== 비참했던 삼국 시대 ====

    - 삼국지연의로 잘 알려져 있는 삼국 시대.
    - 기근이 온나라에 퍼져 사람들은 인육을 먹었고 노인들은 버려졌다.

    [실제로는 비참했던 삼국시대]
    지방 호족의 대두로 인해 분열과 쇠퇴의 길을 걸었던 후한에서는 기근이 되풀이 되었다. 2세기 중엽이 되자 심장부에 해당하는 수도 낙양 근처에서도 서로 인육을 먹고, 노약자가 길거리에 버려지는 비참한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한 가운데 184년 수십만 명의 농민이 참가한 대농민 반란이 일어났다. 새로운 왕조의 건설을 목표로 새 왕조의 상징색인 황색 수건을 들고 일어난 황건적의 난이다. 이 난은 제국의 멸망을 앞당겼다. 난은 진압되었으나 군웅할거 시대로 급속히 접어들었다.

    220년경 거의 동시에 3개의 나라가 생겼다. 난세의 영웅, 조조의 아들 조비가 황제에게 천명이 바뀌었다는 칙서를 강요하여 퇴위시키고 위를 세우자 강남의 손권이 오를 귓불이 남달리 긴 복귀를 한 유비가 군사 제갈 공명의 도움을 받아 사천에 촉을 세웠다. 이로써 중국은 삼국이 대립하는 삼국 시대가 되었다.

    유비를 어진 군주로 묘사한 소설 삼국지연의가 흥미진진하게 그린 이 시대는 실제로는 지독한 기근에 시달리던 시대였다.

    후한 말인 2세기 중엽에 약 5,000만 명을 넘었던 인구가 삼국 시대 초기에는 세 나라 합쳐 약 500만 명에 불과할 정도로 급격히 줄었다.

    [유목민에게 황하 유역을 빼앗기다]
    삼국 중에서 가장 세력이 컸던 위가 촉을 합병하여 중국의 재통일이 가까워을 무렵 265년에 실질적인 세력자가 된 무장 사마염이 위 황제에게 제위를 내놓게 하고 새로이 서진을 건국했다. 280년 서진은 오를 무너뜨리고 통일을 이루었다.

    그러나 사마염의 뒤를 이은 혜제는 곡식이 없어 백성들이 굶어죽는다는 말을 듣고도 그러면 곡식 대신 고기를 먹으면 될 것 아니냐고 했던 무척 어리석은 임금이다. 황후 일족이 정치를 좌지우지하게 되자 황제 자리를 노리고 8명의 왕이 서로 죽고 죽이는 8왕의 난(291~306)이 일어났다.

    전란이 일어나면 주변의 유목 기마 민족들이 자주 이용되는데, 흉노족의 왕이 황제를 칭하고 나선 이후 유목민의 지도자들은 각지에서 자립하였다. 5호라 불리는 몽골계, 퉁구스계, 티베트계 유목민이 황하 유역을 점령하고 잇따라 국가를 세워 서진은 316년에 멸망했다. 그후 중국은 백수십 년에 이르는 5호 16국 시대로 돌입한다.

    [동아시에도 있었던 민족 대이동]
    서진이 무너진 지 2년 후 사마의는 건강(현재의 남경)을 수도로 하여 동진을 세웠다. 이 시기에 한민족의 대이동과 이주가 확산되어 황하 유역에서 발달한 고도의 문명이 널리 전파되었다.

    ==== 침입한 유목민의 중국화 ====
    - 화북을 지배한 유목민은 광활한 중국 땅을 지배하기 위해 언어나 이름을 중국화하는 길을 선택했다.

    [정복 왕조임에도 불구하고 중국화한 북위]
    유목민의 침입으로 대혼란이 오래 계속되던 화북은 439년 선비족의 북위가 북연을 쓰러뜨리고 백수십 년 간 계속되어 온 5호 16국 시대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 결과 북의 통일 왕조와 남의 왕조(송, 제, 양, 진으로 이어짐)가 대치하는 남북조 시대가 시작되었다.

    오랜 기간 장성 내외의 광대한 지역을 지배한 북위는 본격적인 정복 왕조였다. 북위는 서역에서 전래된 불교를 이데올로기로 이용하여 운강석굴에 역대 황제의 큰 불상을 만들어 황제의 지배와 권위를 확립하려 했다. 그러나 원활한 통치를 위해서는 한인 관료들의 협력이 불가피해 제국은 급속히 중국화의 길을 걸었다.

    제6대 효문제는 수도를 장성 부근의 대동으로부터 후한의 도읍이었던 낙양으로 옮기고 선비어와 선비의 풍습을 버렸다. 이름까지 중국식으로 바꾸고 한인 귀족과의 결혼을 장려했다. 이는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페르시아화하려 했던 것과 비슷하다. 균전제를 실시하여 원칙적으로 농지를 황제의 지배하에 두고 농민에게 똑같이 빌려 주고 또 일정한 숫자의 경작용 소를 지급하거나 노비에게도 토지를 주는 등, 타협을 하면서 호족 세력을 견제하였다.

    [수에 의해 재통일된 중국 세계]
    당연히 급격한 중국화에 반발하는 선비인들이 각지에서 반란을 일으켜 북위는 534년 동, 서로 분열했다.
    그러나 589년 양견이 건국한 북조의 수가 남조의 진조를 정복해 약 370년만에 중화는 재통일되었다.

    문제 양견은 율(형법)과 령(행정법)을 정하여 중앙관계를 정비하고 주와 현의 행정 단위를 두어 지방을 지배했다. 또 농지를 황제의 관리하에 두고 골고루 농민에게 나누어 주는 균전제, 현물 징수(조용 조제), 농민 징병(부병제)을 함께 실시해 농업 국가의 틀을 갖추었다.

    [학력 사회를 만든 과거의 등장]
    수는 중앙집권 체제를 강화하기 위해 학과 시험에 의한 관료채용 제도(선거, 나중에 과거라고 불린다)를 시작하였다. 과거는 20세기 초까지 약 1,300년 간 계속되어 중화 제국을 지탱하는 관료체제의 근간을 이루었으나 여러 가지 폐해를 낳기도 했다.

    ==== 서역에서 들어온 불교가 중국에 완전히 정착 ====
    - 서방 문화의 유입과 함께 불교와 노자가 창시한 도교가 중국 전역에 뿌리를 내렸다.

    [정착해가는 불교]
    5호의 진출 이후 사상 유례 없는 규모로 중국에 서방 문화가 유입되어 정착하였다. 그 중심이 서역에서 들어온 불교이다. 예를 들면 서역 북도의 중심도시 쿠챠 출신의 부다팅가는 수행을 통해 주술로 귀신을 부리는 능력을 익혔다고 해 후조의 보물로 초대받아 40년 동안 1만 명의 신도를 거느렸고 893개의 사원을 세웠다. 그의 문하생인 도안은 최초로 불교 교단을 조직한 사람이다.

    또 인도 귀족과 쿠챠 왕의 여동생 사이에 태어난 구마라습은 후진의 국사 신분으로 장안에 들어와 국가 사업으로 대규모의 대승불교 경전을 한역하는 일에 종사하였다.

    [불교에 대항하여 조직화한 도교]
    화북을 통일한 북위도 불교를 국가 종교로 중시하였다. 그러나 16세로 즉위한 제3대 태무제는 불교에 대항하는 도교를 보호했다. 도교는 노자를 교조로 하며 천상에 있는 신선 태상노군을 숭배하고 불로장수 등 현세의 이익을 역설한다. 태무제는 도교의 개조 구겸지를 스승으로 받들고 446년에 폐불훼석령을 내렸다.

    중국의 전통신앙을 집대성한 도교는 불교와 대항하는 형태로 조직화한 것이다. 폐불훼석령으로 북위 전체의 사원이 파괴되었고 승려와 비구니들은 모두 강제로 환속당했다. 그러나 태무제가 환관에게 암살당하고 문성제가 즉위하자 폐불정책은 중지되고 종교국 장관(사문통)이 된 담요가 불교 진흥에 앞장서 불교 교단을 재건하였다.

    건강을 도읍으로 정한 남조의 여러 왕조에서도 당나라 시인 두목이 남조 480사에서 노래한 것처럼 많은 절이 지어졌고, 귀족 불교가 꽃을 피웠다.

    특히 양 무제는 독실한 불교 신자로 호화로운 의상을 몸에 걸친 뒤 자신의 몸을 절의 노예로 기부하고(이를 사신이라 함) 신하가 막대한 돈을 들여 황제를 절로부터 되사오는 식으로 거액의 기부를 했다고 한다. 그가 인도에서 바닷길을 통해 광주에 도착한 인도의 명승 달마와 불교 교의 논쟁을 벌였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달마는 낙양의 소림사에서 벽만 바라보고 9년 간 좌선을 했는데, 그리하여 팔다리가 없는 달마 이야기가 생겨났다.)

    ==== 수나라는 왜 불과 40년만에 멸망한 것일까? ====
    - 오래 지속되라고 수라고 정했건만 대규모의 토목공사와 수차례의 원정이 국가의 수명을 단축했다.

    [대운하 건설로 중국 세계를 확대했으나...]
    수는 약 370년만에 중국의 남북을 통일하고 현물 징세(조용조 제도)와 농민 징병(부병제)을 조합한 농업 국가의 체제를 갖추어 중국사에 큰 자취를 남겼으나 겨우 38년만에 멸망하고 말았다.

    부왕인 문제와 형인 황태자를 살해하고, 제2대 황제가 된 양제는 폭 30~40m, 총 길이 1,8000km에 이르는 대운하를 건설하였다. 이 운하는 물자가 풍부한 강남과, 정치/군사 중심지인 화북을 잇는 대동맥이다. 대운하 건설에는 항상 100만여 명의 백성이 동원되었다.

    놀기를 좋아한 양제는 운하를 유흥에 이용했다. 그가 강도에 있는 이궁으로 갈 때는 방이 120개이고 금은으로 치장한 4층짜리 용선을 비롯해 수십 척의 배가 운하에 떳으며 8만여 명의 농민이 배를 저었다고 한다.

    또 세 번의 고구려 원정 실패도 수의 멸망을 앞당겼다. 수는 고구려를 외번국으로 봉했으나 고구려는 일체의 조공을 바치지 않았으며 오히려 수와 대립하고 있던 돌궐과 제휴할 움직임을 보였다. 제국의 위엄에 손상을 입은 양제는 610년 이후 세 번에 걸쳐 고구려 원정에 나섰으나 모두 실패했다.

    [이궁에서 암살된 양제]
    이러한 대규모 토목공사와 잇따른 원정에 따른 과도한 부담을 견디다 못한 농민들은 반란을 일으켰고, 이는 곧 확산되었다. 마지막 원정이 있은 지 4년 후 이궁에서 꼼짝않고 있던 양제는 근위병에게 살해당하고 수는 멸망하였다.

    그런데, 수 왕조를 창건한 문제는 북주의 수국공 출신이다. 그래서 국호를 수(隨)로 정했는데 이 문자에 들어 있는 책받침 변이 발을 의미하므로 이것이 없으면 나라가 빨리 멸망한다고 여겨 국호를 수(隨)로 바꾸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중화 질서의 재편을 서둘러 시도하려고 민중을 괴롭혀 불과 2대에 그치며 멸망하고 말았다.

    [약 300년 간 지속된 당의 건국]
    수나라 말기의 대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수의 당국공이었던 이연이 세력을 확장하여 갔다. 그는 일단 양제의 손자를 황제로 삼고 이 황제로부터 제위를 물려받는 선위라는 절차를 거쳐 618년에 당조를 열었다. 당은 약 290년 동안 이어진다.

    (수의 대운하는 송대까지는 그대로 이용되었으나 남송 이후 화북지방이 금에게 점령되면서 황폐해졌다.)

    ==== 부처라 칭하여 여제가 된 측천무후 ====
    - 당의 측천무후는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황후로 등극한 뒤 책략을 써 중국 역사상 유일한 여제가 되었다.

    [당의 기반을 굳힌 2대 태종과 3대 고종]
    618년 이연으로부터 시작된 당나라의 2대 태종(이세민)은 수의 제도를 계승하여 조용조 제도와 부병제, 관료 제도, 지방행정 조직들을 정비했다. 나아가 그는 몽골 고원의 동돌궐과 티베트의 토번을 토벌했다. 동돌궐의 지배하에 있었던 북방 부족들의 우두머리를 장안에 모아 천가한이라는 북방 유목민의 최고 지배자의 지위를 인정하게 하여 300년 제국 통치의 기초를 다졌다.

    3대 고종 때에는 신라와 연합하여 한반도의 백제, 고구려를 멸망시켰으며 중앙아시아의 서돌궐을 공격하여 당나라는 문자 그대로 세계 제국이 되었다.

    [자신의 아이마저 죽인 무후]
    한편 40대에 들어선 고종이 현기증을 이유로 정치를 멀리 하자 황후인 측천무후가 실권을 장악했다. 산서의 목재상인의 딸이었던 무후는 빼어난 미인으로 만 14세의 나이에 태종의 후궁이 되었다. 태종이 죽은 뒤 무후는 비구니가 되었으나 3대 황제인 고종의 눈에 들어 다시 후궁이 되어 궁으로 들어온다.

    그녀는 고종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을 왕황후가 어르고 있는 사이에 자리를 비우고 나중에 그 아기를 목졸라 죽였다. 고종에게 자신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와황후가 아기를 죽였다고 거짓을 고해 왕황후를 내쫓게 하고 자신이 황후로 등극하였다.

    그후 황제가 왕황후 문병을 다녀왔다는 말을 듣고는 왕황후를 때리고 팔다리를 잘라 술독에 담가 참혹하게 죽였다. 그녀는 온갖 수단을 다 써 여인들의 싸움에서 승리, 31세의 나이로 왕후의 지위를 거머쥐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제위에 오른 무후]
    고종이 죽고 난 뒤 자신이 낳은 아들이 왕위에 오르자 무후는 여성인 미륵보살이 하강하여 번영의 세계가 도래한다는 내용의 대운경을 만들게 하고는 자신이 바로 미륵보살의 환생이라고 선언했다.

    그녀는 자신이 황제가 될 것을 요구하는 운동을 은밀히 조직하고 이를 이용하여 중국 역사상 유일한 여제(성신황제)가 되었다. 그후 그녀는 각 지방에 대운사를 건설해 대운경을 외우게 했다.

    측천무후는 주로 나라 이름을 바꾸었다(690~705). 측천무후는 보수적인 문벌 귀족을 억누르고 과거로 관료를 발탁하여 번영의 기반을 다졌다. 문화도 중요시하여 하늘, 해, 달을 나타내는 중요한 문자를 스스로 새로 제정했다(측천 문자 - 모두 17 글자로 되어 있다).

    [국제 도시 장안의 흥망성쇠]
    8세기 초에 제6대 황제가 된 현종(재위 712~756) 시대는 당나라 최고의 전성기였다. 그의 45년 간의 통치기간 중 30년 간은 인구가 최대가 되고 재정도 충실하여 개원의 치라 불리는 번영기였다. 수도 장안은 세계 최대의 국제 도시로 번성하였다. 그러나 현종 말년에 이르면 토지 부족, 주변 민족의 이탈, 농민에 병역을 의무화한 군사 제도의 동요 등으로 재정이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변방에는 절도사라고 하는 군사/정치의 지배권을 지닌 무인이 열 군데에 배치되어 당나라의 번영도 주변으로부터 위협을 받기 시작했다.

    ==== 양귀비의 매력에 흔들리는 당나라 ====
    - 당나라는 양귀비와 그 일족의 횡포를 계기로 멸망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세력을 키운 외국인 절도사, 안록산]
    당나라 군대는 751년에 중앙아시아의 타라스 강가 전투에서 신흥 이슬람 세력인 아바스조의 군대에게 2만 명이 포로로 잡히는 대참패를 맛보았다. 그후 위구르 등 유목민의 침입에 고민하던 당은 나라의 변방과 요지에 절도사가 이끄는 군대를 배치했다. 절도사 중 가장 큰 세력을 가진 이가 소그드인 아버지와 돌궐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6개국 언어를 하는 안록산이었다.

    무척 뚱뚱해 말을 타면 뱃살을 얹어놓을 안장이 하나 더 필요했다는 안록산은 값비싼 선물과 뛰어난 언변으로 현종과 측근에게 접근하였다.

    네 배에 무엇이 들어 있느냐?는 현종의 질문에 그가 충절에 불타는 일편단심뿐이라고 대답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안록산은 장안에서 가까운 주요 3개 절도사를 겸임해 최대의 군사 세력이 되었다.

    [며느리를 빼엇은 현종]
    만년에 들어서 오래 해로한 황후와 사별한 현종은 흰 피부에 풍만한 양귀비(옥환)를 장안 교외의 화청지 온천에서 보고 한눈에 반해버렸다. 그녀는 17세에 18번째 황자인 수왕의 비가 되었다. 현종은 일단 그들을 이혼시키고 그녀를 도관(도교의 사원)으로 보낸 뒤 744년에 궁중으로 불러들여 이듬해에 자신의 비로 삼았다.

    당의 황제는 황후 1명, 제2 부인인 귀비 등 122명의 왕비를 거느릴 수 있었는데 양귀비는 제2 부인의 지위에 오른 셈이다. 이때 현종의 나이 62세, 양귀비는 27세였다. 양귀비는 가무에 능했으며 특히 비파의 명인이었다. 바로 그 점이 스스로 작곡도 하고 이원이라는 예능인 양성시설을 세울 정도로 예술을 좋아했던 현종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이다. 일본에서는 가부키계를 이원이라고 하는데, 그 어원은 실은 당에 있다. 양씨 일족은 최고의 영화를 한껏 누렸으며 양귀비의 사촌 양국충은 별 능력도 없는데 재상의 자리까지 올랐다.

    [분열되고 흔들리는 당]
    한편 권력을 장악할 야심을 갖고 있던 안록산은 양씨 일족의 횡포를 막는다는 구실로 무장 사사명과 결탁하여 반란을 일으켜 태평성대에 취해 있던 장안을 갑자기 공격했다. 이것이 약 10년 동안이나 계속된 안사의 난(755~763)이다.

    수도를 빼앗긴 황제와 측근은 일시적으로 촉(사천)으로 도주했는데 도중에 병사들의 요구로 38세의 양귀비와 그 일족은 살해되고 현종도 퇴위당했다.

    나라는 망했어도 산천이 있고 성춘에 올라 초목을 찾는다...로 시작되는 춘망은 이때의 혼란을 묘사한 시다. 작자 두보는 이백과 함께 당나라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둘 다 현종 때 사람이다.

    장안을 점령하고 새 왕조의 창설을 노린 안록산이 차남에게 암살당하고 그 차남은 사사명에게 살해되고 사사명 역시 아들에게 살해되는 등 반란군의 혼란은 계속되었다.

    무장들의 잇따른 배반과 위구르의 지원 등으로 763년 안사의 난은 진압되었다. 그러나 거액의 공물을 요구하는 위구르의 침입과 절도사들의 독립 등으로 전성기에 5,000만 명을 넘었던 당의 인구는 약 2,000만 명으로 줄어들고 과거의 영화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시인 백낙천은 후에 양귀비의 미모에 대해 눈동자를 굴리며 살짝 웃으면 백가지 요염한 표정이 생겨난다고 묘사했다.)

    ==== 처음부터 부패로 얼룩진 송의 관료국가 체제 ====
    - 모든 고급 관료를 과거로 선발하였는데 합격한 엘리트 관료에게는 장밋빛 인생이 기다리고 있었다.

    [당나라의 멸망으로부터 5대 10국 시대로]
    당나라 말기인 9세기 말엽 소금 밀매상인 황소를 지도자로 하는 농민 반란(황소의 난. 875~884)이 중국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황소는 한때 황제가 되어 대제라는 나라를 세우기도 했으나 부하 주전충의 모반으로 결국 반란은 진압되었다.

    907년 절도사의 지위에 오른 주전충은 당을 멸망시키고 후량을 세웠다. 그후 50여 년 간 강남과 화북을 잇는 경제도시 개봉을 수도로 하여 다섯 왕조가 교체되었으나 모두 수명이 길지 못했고 주변에 절도사가 10개국을 세워 서로 힘을 겨루는 5대 10국 시대(907~979)로 들어섰다.

    각국 모두 많은 군대를 양성해야 할 필요가 있어 산업의 육성에 주력해 이 시대에는 경제가 발달했다. 그러나 중국은 전통적으로 무인의 사회적 지위가 낮고 절도사의 부하는 개인적인 계약 관계에 있으며 절도사는 자신의 토지를 갖지 않고 세금으로 군대를 양성하기 때문에 일본의 무가 사회와 같은 형태가 되지는 않았다.

    [무력에 의한 지배에서 문치주의로]
    960년에 5대의 마지막 왕조 후주의 절도사 태조 조광윤은 일곱 살인 황제로부터 왕위를 물려받아 송 왕조를 건국했다.
    979년 제2대 태종은 혼란이 오래 계속되던 중국을 통일했다. 송은 그때까지의 무단 정치를 중지하기 위해 절도사를 폐지하고 정예군을 모두 수도 주변으로 불러들여 황제의 통솔하에 두고 문인 관료가 통치를 담당하는 문치주의를 채용, 황제 독재 제체를 강화했다. 또 당의 멸망기에 귀족들이 몰락했기 때문에 모든 고급 관료를 관료 선발시험인 과거로 뽑았다.

    [고급 공무원에게는 뇌물도 있었다!]
    과거는 3년마다 지방에서 실시되는 주시, 중앙의 예부에서 실시하는 성시, 황제 자신이 시험관이 되는 전시로 구성되었다. 중앙 시험은 식량과 침구를 지참하고 시험장에 들어가 30시간 이상에 걸쳐 필기시험을 치러야 하는 매우 힘든 시험이었다.

    황제는 전시를 최종 단계에 추가시켜 모든 합격자의 스승이 되고 이러한 사제 관계를 이용하여 관료에 대한 통제를 강화했다. 황제의 대리인으로서 관료에게는 폭넓은 권한이 주어졌다. 심지어는 뇌물 수수까지도 공공연하게 인정되어 작은 현의 장관을 3년 동안 하면 손자대까지 놀고 먹을 정도의 수입이 생긴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시험 내용은 43만여 글자로 되어 있는 유학 경전(고전)과 그 2배에 해당하는 양의 주해서, 역사서들을 통째로 암기해야만 풀 수 있다. 그러므로 관료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여섯 살 때부터 오늘날의 학원 같은 곳에서 입시 공부를 시작해야 했다.

    관료와 그 예비군 일족은 사대부 층이라 불렀으며 이들은 송나라의 새로운 지도층이 되었다. 당의 귀족 문화 대신에 유학을 배경으로 하는 서민 문화가 번성한 것은 이 때문이다.

    (당은 재정난을 타개하고자 소금 전매제를 실시했다. 그 결과 소금의 밀매로 폭리를 취한 밀매 상인이 큰 세력을 갖게 되었다.)

    ==== 힘없는 송은 돈으로 평화를 샀다. ====
    - 재력은 있었으나 힘이 없었던 송은 돈으로 북방 민족의 환심을 샀다. 그 결과 국가는 당연히 재정난에 빠졌다.

    [송 자기와 함께 발전한 경제]
    당나라 말기에서 송나라 초기에 걸쳐 화북은 장기간의 개발로 목재가 고갈되어 석탄을 연료로 이용하였다. 석탄 이용이 일반화되면서 석탄을 이용한 제철, 백자와 청자 등의 자기 생산, 견직물업, 종이 제조가 활발해졌다.

    귀족의 지배로부터 자립한 농만은 농사를 발달시켰고 차 재배와 양잠 등의 부업도 열심히 했다. 따라서 농촌에까지 상품경제가 침투하여 식료품이나 일용 잡화를 취급하는 초시라는 시장이 각지에 섰으며, 소규모의 경제도시도 무수히 생겨났다.

    대운하와 황하가 만나는 곳에 있는 수도 개봉은 시내의 4개의 운하를 통해 전국의 여러 도시로 연결되고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상인들이 활동하는 경제도시였다.

    번화가에는 수천 명을 수용하는 큰 극장이 여러 군데 있어 늘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나침반과 외양 범선을 사용한 해외무역도 활발하였으며 일본이나 동남아시아뿐 아니라 인도와 페르시아 방면과도 활발히 무역하여 전세계의 물자가 광주와 천주 등의 항구 도시를 거쳐 수도 개봉으로 몰려들었다.

    [눈엣가시 같은 존재, 거란의 요]
    송의 가장 큰 외교 문제는 몽골 고원과 동북 지방을 지배하는 거란족이 세운 요나라로부터 만리장성 남쪽에 넓게 퍼져있는 광대한 영토를 탈환하는 것이었다.

    요는 과거의 북위에 필적하는 정복 왕조이다. 유목사회를 유지하면서 정복한 농경지대는 중국의 전통적인 시스템으로 지배하는 이중통치 체제를 취하고 있어 송에게는 위협적인 존재였다. 5대 10국 시대에 요의 수중에 넘어간 장성 이남의 영토 회복은 안전 보장면에서 꼭 필요했다.

    그러나 11세기 초 송은 요와의 전쟁에서 패해 해마다 대량의 은과 비단을 진상하기로 약속했다. 즉 막대한 돈으로 평화를 사는 정책을 택한 것이다.

    [기득권자의 이기주의로 실패한 왕안석의 개혁]
    게다가 국내에서는 관료 시스템과 군대를 유지하는 비용이 점점 더 늘어나 시간이 흐를수록 국가 재정은 더욱 어려워졌다. 뇌물과 정계의 부패로 빈부의 차는 확대되고 서민들의 세금 체납액은 증가해 국가 수입은 그만큼 감소했다.

    이같은 안팎의 위기를 타개할 필요성을 강하게 느낀 제6대 신종은 11세기 후반 왕안석을 재상으로 발탁해 대규모 정치개혁을 시도했다.

    왕안석은 재정난을 극복하기 위해 대담한 개혁에 착수하였다. 대지주와 대상인의 특권 제한, 공적 융자, 고용 창출, 물가 안정, 군사비 삭감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것으로 이를 왕안석의 신벙이라 불렀다.

    국가의 재정을 건전하게 하고 체제를 바로잡기 위해 꼭 필요한 조치였으나 자신들의 특권이 줄어드는 것을 우려한 관료와 대지주들은 서로 결탁하여 개혁에 저항, 마침내 왕안석을 실각시키고 반년만에 모든 신법을 폐지시켰다.

    (송나라 경제의 팽창은 대량으로 주조되던 동화만으로 따라갈 수가 없어 철전이 만들어지고 나중에는 교자라고 하는 지폐까지 사용되었다.)

    ==== 북방 민족에 굴복한 중화제국 ====
    여진족이 세운 금에 쫓겨 송은 남쪽으로 이동하였고 그후 중화제국은 북방 민족의 수중에 들어가게 된다.

    [북방 민족에게 힘없이 무너진 송]
    왕안석이 실각한 후 관료들은 신법당과 구법당으로 분열하여 다투었고 그 결과 행정이 마비되는 최악의 사태를 맞았다. 이러한 때에 퉁구스계인 여진족이 금을 건국했다(12세기 초).

    이 시기의 송 황제 휘종은 풍류 천자로 알려진 인물로 서화에는 뛰어났으나 정치적으로는 완전히 무능했다. 휘종이 강남에서 진귀한 돌과 나무를 모아들여 대정원을 만들겠다며 농민들에게 가혹한 부역을 시키는 바람에 대대적인 농민 반란이 일어았다. 그런 가운데 송나라는 신흥세력인 금과 동맹하여 요를 공격하기로 했는데, 농민 반란이 일어나 공동 출별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화가 난 금이 송나라의 위약을 문제 삼아 쳐들어오자, 휘종은 책임을 느끼고 제위를 아들인 흠종에게 물려주었다.

    금나라 군대는 1127년 수도 개봉을 점령하고 휘종과 흠종을 비롯한 황족과 관료 등 3,000명 이상을 동북으로 연행하여 송을 멸망시켰다(정강의 변, 1126~1127). 휘종과 흠종은 금나라 영토에서 병사하였다.

    [역시 돈으로 평화를 유지한 남송]
    흠종의 동생 고종은 간신히 강남으로 도망쳐 임안(현재의 항주)을 도읍으로 삼아 남송을 세웠다.

    남송은 1147년 금의 화북 점령을 인정하고 신하의 예를 갖추어 해마다 은 15만 관 등의 공물을 보내기로 약속했다. 요컨대 남송 역시 과거의 송나라처럼 돈으로 평화를 산 것이다.

    화북이 북방 민족인 금의 지배로 넘어가고 중화제국이 북방 민족의 신하가 되었다는 것은 곧 동아시아 세계의 주도권이 북방 민족에게 넘어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제 환경이 이렇게 어려웠음에도 불구하고 남송은 광대한 경작지를 개척하고 페트남으로부터 점성도라는 수량이 많은 새로운 품종의 벼를 토입하여 2기작/2모작을 실시했으며 도시의 수공업을 성장시켰고 나침반을 이용하여 정크라는 외양 범선으로 동남아시아 남인도에 이르는 광역 교역권을 구축했다.

    이러한 폭발적인 경제 성장에 힘입어 금전에 의한 평화가 유지되었다. 일시적으로 북방 민족의 압력을 막아낸 것이다. 인구 150만 명의 수도 임안은 남송 번영의 상징이었다. 수천 명을 한번에 수용하던 극장과 와시라는 번화가의 모습은 어려운 정치 상황을 잊게 하였다.

    그러나 위기는 점점 진행해 약 130년 후에 남송은 몽골군에게 멸망하고 만다.

    (상설 극장, 행사장, 유곽, 음식점이 밀집되어 있던 번화가를 와시 또는 와사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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